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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0)장경화편 > 전국우승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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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동로능 30 17 7 6 58
4 북경국안 30 15 8 7 53
5 강소소녕 30 13 9 8 48
6 하북화하 30 10 9 11 39
7 상해신화 30 10 8 12 38
8 북경인화 30 9 10 11 37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0)장경화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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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룡| 작성일 :18-12-14 08:25| 조회 :2,47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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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기고 완강한 경기작풍의 ‘무쇠방패’―원 연변오동팀의 주력수비수 장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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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화.

 

1994년부터 중국의 직업축구경기인 갑A련맹경기가 전국적으로 정식으로 시작되고 축구경기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축구의 고향’ 연변에도 세찬 축구열풍이 불었다. 

 

당시 연길시인민체육장은 경기 때마다 빈자리 하나 없을 정도로 구경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경기장 밖 담장 너머 높이 솟은 소나무가지에까지 기여올라가 뽈구경을 하는 극성팬들까지 있어 변강소도시의 축구열기를 실감하게 했다. 

 

당시의 연변팀의 경기와 이름만 불러봐도 익숙하게 떠오르는 축구선수들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많은 연변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축구선수들 중에서도 경기작풍이 완강하여 ‘무쇠방패’, ‘개고기’라는 별명까지 얻은 축구선수가 있는데 그가 바로 연변팀의 대인수비수 장경화선수이다. 

 

연변팀의 대인수비였던 장경화는 사납게 덮쳐들어 상대방의 진공루트를 적시적으로 차단하고 이악스레 공을 빼앗는 면에서 언제나 검질기고 완강한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장경화는 1971년 8월, 화룡현의 한 보통 로동자가정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태여났다. 어려서부터 체육운동에 남다른 자질이 있었던 장경화는 화룡시건설소학교 3학년에 다닐 때 벌써 학교의 륙상선수로 뽑히여 전 시 소학교운동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1979년에 장경화는 부모를 따라 연길시로 이사해왔는데 건공소학교에 다니게 되였다. 어느 하루, 체육시간에 학급의 남학생들과 뽈을 차고 있었는데 장경화의 빠른 속도와 훌륭한 체능을 보아낸 체육교사였던 남영학선생님이 장경화를 학교축구팀에 받아들였다. 학교축구팀에 가입한 후 장경화는 남영학선생님의 훈련배치에 따라 수비선에서의 방어기술을 익히기에 힘썼다. 그것이 바로 장경화가 후날 우수한 대인수비수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된 첫 스타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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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의 장경화.(방태호 찍음) 

 

1986년 7월, 연길시제2중학교에 입학한 장경화는 축구스타가 되려는 욕망을 안고 자기절로 학교체육교연실의 축구지도였던 남인수선생님을 찾아가 학교축구팀에 자기를 받아줄 것을 간청했다. 남인수선생님 역시 장경화의 속도가 빠르고 체능이 훌륭한 특점을 보아내고는 흔쾌히 학교축구팀에 받아주었다. 학교축구팀에서도 장경화는 수비수의 역할을 맡았으며 자신의 기량을 제고시키기 위해 매일 훈련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987년 여름방학 때였다. 룡정에서 전 주 중점고급중학교 축구경기가 펼쳐졌는데 장경화 역시 연길시2중팀 주력선수로 경기장에 나서서 맡겨진 수비임무를 착실히 잘 완수해나갔다. 

 

빠른 속도, 훌륭한 체능, 특히 상대방에 대한 대인방어와 공빼앗기에서 매우 이악스러웠던 장경화의 표현은 매우 출중했다. 당시 후비선수선발을 목적으로 경기장을 찾았던 길림성청년팀의 동경춘, 리호은 두 코치의 눈에 들어 장경화는 열일곱살에 벌써 길림성청년팀의 선수로 선발되였다. 길림성청년팀의 정식선수로 된 후 장경화는 초보자의 경험부족과 실력부족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팀에 들어온 지 4년 철을 잡는 1990년까지만 해도 후보석을 지키는 신세였지만 결코 락심하지 않았다. 하루 빨리 경기장을 주름 잡는 축구스타가 되려는 욕심은 그를 더욱 훈련에 땀동이를 쏟게 했다. 그의 인내와 구슬땀은 헛되지 않아 1991년도부터 장경화는 드디여 길림성청년팀의 주력선수로 경기장에 나설 수 있게 되였다. 그 해 장경화는 길림성2팀의 명의로 전국축구을급팀경기에 참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년말에는 길림성1팀의 정식선수로 선발되는 행운까지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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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로씨야친선경기에서의 장경화(첫줄 왼쪽 세번째). 

 

장경화가 성숙된 축구스타의 풍채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97’갑A련맹경기에서부터였다. 그는 연변팀에서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공빼앗기, 충격력, 체능우세, 박투정신으로 자신의 독특한 경기풍격을 형성하였다. 그 해 6륜부터 팀의 주력수비수로 등장한 장경화는 로선수 황경량과 멋진 배합으로 상대방의 공격수들을 단단히 견제함으로써 연변팀이 련속 아홉껨의 불패의 신화를 창조하고 최종적으로는 갑A리그 4강이라는 훌륭한 경기성적을 따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장경화선수가 말하는 수비수는 공격수를 직접 대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격수들은 키가 크고 건장하며 충격력이 강하다. 장경화선수는 특히 이름이 있는 국내외 공격수들을 대적하면서 힘이 들고 어려웠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조금도 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대인마크를 하다 보니 상대공격수의 거친 공격에 몸 여기저기가 공격을 받고 상처가 생기는 일은 기수부지였다. 

 

장경화선수가 하도 검질기게 상대공격수들을 차단하고 대인방어를 잘하니까 축구팬들이 그에게 ‘무쇠방패’, ‘개고기’라는 별명까지 달아주었다. 

 

장경화선수는 강한 공격수를 대처해야 하는 수비수는 원래 피동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동이라고 해서 상대의 뒤만 쫓다 보면 영원히 피동에 처한다. 주동을 쟁취하는 방법은 바로 공의 흐름을 상대보다 먼저 파악하고 한발 앞서 뛰면서 주동적인 수비를 이끌어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98’갑A련맹전 제11라운드 연변오동팀 대 대련만달팀과의 경기에서였다. 당시 중국축구무대에서 강호였던 대련만달팀에서는 전반전에 한꼴 허락하고 그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대거 진공을 발동하였다. 그러나 두겹, 세겹으로 구축된 연변팀의 철옹성수비에 부딪쳐 번마다 공격이 무산되고 말았다. 특히 상대방의 주요한 득점수인 학해동을 지켜나선 장경화선수의 표현이 매우 출중했다. 장경화는 죽기내기로 학해동을 밀착수비하면서 상대방의 패스는 물론 슛기회마저 번마다 파괴하였다. 당시 중국의 제1공격수로 소문난 학해동마저 장경화의 수비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도리머리를 흔들었고 결국 강호 대련만달팀은 이 날 경기에서 연변팀에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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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중국공산당 길림성 제11차 대표대회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리경호 주장과 함께. 

 

당시 연변오동팀에서는 대련만달팀뿐만 아니라 또한 상해신화, 산동로능 등 허다한 강팀들과 대적해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강하게 맞싸워 훌륭한 성적들을 따내군 했다. 

 

그 때 연변팀은 전문 강팀을 말에서 끌어내리고 꺾어버리는 ‘다크호스(黑马)’와 ‘강팀킬러(强队杀手)’의 모습으로 중국축구무대에서 크게 소문났는데 이와 같은 축구신화의 배후에는 장경화선수와 같은 우수한 연변축구건아들의 숨은 땀방울과 각고의 노력이 깃들어있다. 

 

연변축구가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하던 2000년 이후, 장경화선수 역시 절강록성에 팔려간 팀을 따라 산 설고 물 선 타향객지를 돌다가 연변축구에 대한 애착과 사랑 때문에 결국 연변으로 돌아왔다. 

 

장경화선수는 2004년부터 고향 연길에 돌아와 청소년축구사업에 투신했다. 2004년에 연변체육운동학교에서 사업하다가 2009년에는 연변팀의 조리지도원으로 잠간 일하기도 했다. 그동안 장경화는 김경도, 박세호, 리호, 리훈 등 우수한 축구선수들과 남송, 리룡, 리강 등 U23 신진축구선수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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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북해동계훈련에서 전술포치를 하고있는 장경화감독.

 

2016년과 2017년에는 한국에 가서 청소년축구훈련에 대한 공부를 체계적으로 연수 받았는데 2017년 하반년부터 2006년생 축구꿈나무들을 대상으로 배운 지식을 접목시키기도 하였다. 

 

“연변팀이 중국축구무대에서 완강한 작풍과 경기풍격으로 주목받고,  조선족축구건아들이 중국축구무대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을뿐만아니라 연변의 축구열이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장경화씨는 말했다. 

 

연변축구 역시 새로운 비전을 위해 후비력량양성이 매우 중요한데 축구를 중요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연변의 축구사업의 발전에 훌륭한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장경화씨는 전망했다. 

 

그는 현재 몸을 담고 있는 연변체육운동학교에서 연변의 축구꿈나무들을 더 많이 양성, 발굴하기 위해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 큰 기여와 빛과 열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길림신문 김룡 안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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