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吉林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6)지문일편 > 전국우승50주년

본문 바로가기
순위표
순위 팀이름 점수
1 상해상항 30 21 5 4 68
2 광주항대 30 20 3 7 63
3 산동로능 30 17 7 6 58
4 북경국안 30 15 8 7 53
5 강소소녕 30 13 9 8 48
6 하북화하 30 10 9 11 39
7 상해신화 30 10 8 12 38
8 북경인화 30 9 10 11 37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6)지문일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룡| 작성일 :18-12-28 09:34| 조회 :2,201| 댓글 :0

본문

연변팀 슈퍼리그진출의 숨은 공신 지문일 


61f6e1605ecc07b874f860da03b08bf0_1545960
지문일. 

 

“훌륭한 꼴키퍼 한명이 절반 축구팀을 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축구경기에서 꼴키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작은 점수 차이라도 승패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축구경기 규칙상 키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대비해 나온 일리 있는 말이다. 

 

팬들로부터 ‘지신(池神)’, 연변팀의 ‘거미손’ 등으로 불리우면서 연변팀의 2015년 갑급리그 우승과 슈퍼리그진출에서 숨은 공신으로 알려진 축구선수, 그가 바로 연변부덕축구팀의 주력꼴키퍼 지문일선수이다. 

 

184센치메터의 키는 꼴키퍼선수의 신장 치고는 결코 큰 키가 아니다. 지문일선수는 중국슈퍼리그의 꼴키퍼들 가운데서 가장 키가 작은 키퍼선수임을 스스로 자인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대수랴! 지문일선수는 키퍼로서 순간적인 반응이 민감하고 1:1 대처능력이 출중하며 판단력이 신속하고 빠른 등 특점으로 중국축구무대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다. 

 

1988년 2월, 연길에서 태여난 지문일은 축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지문일은 연길시공원소학교 축구팀에서 소학교 3학년이던 1997년도부터 꼴키퍼로 뛰면서 키퍼운동선수의 첫 스타트를 뗐다. 1997년도와 1998년도에 지문일은 전국 ‘보배컵’청소년축구시합에 참가하면서 팀이 당해의 준우승과 우승을 따내는 데 적극적인 기여를 했으며 키퍼인생 초학자로서의 값진 경험들을 쌓았다. 

 

61f6e1605ecc07b874f860da03b08bf0_1545960
어린 시절의 지문일. 


중학교는 훈춘시제6중학교를 다니면서 훈춘체육운동학교에서 유명한 한국키퍼지도의 지도를 받았다. 연길에서 훈춘으로 공부하러 간 것도 결국은 한국의 유명한 키퍼지도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훈춘에서 있은 중학교축구시합에서 지문일은 세번의 우승을 따내는 영예를 지녔다. 그런데 작정하고 찾아간 한국의 유명한 키퍼지도가 얼마 안되여 귀국하는 바람에 지문일은 다시 배움의 길에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2001년도부터 지문일은 연변체육운동학교에서 키퍼코치인 한종국의 엄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키퍼기술을 땀을 흘리면서 련마했다. 

 

그러던 2003년 7월, 전국도시운동회에서 주체육운동학교팀이 우승을 하면서 지문일을 비롯한 네명의 연변체육운동학교의 선수들이 연변팀에 선정되는 행운을 얻게 되였다. 그 때 선정되였던 지문일과 한청송, 최영철, 조명 등 선수들은 현재 중국축구무대에서 손꼽히는 중견으로 활약하고 있다. 

 

2003년에 연변팀에서는 을급리그에서 3위를 하면서 갑급리그진출에 실패해 새로운 진로를 위한 탐색과정에 있었다. 그 때 연변팀을 새롭게 맡은 고훈 감독이 바로 지문일을 비롯한 네명의 후생력량들을 뽑아 연변축구의 갑급리그진출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고 대담히 도전장을 내민 것이였다. 그 보람으로 연변팀에서는 2004년도에 을급리그에서 갑급리그B조에 올라오는 변화를 이룩하였다. 

 

61f6e1605ecc07b874f860da03b08bf0_1545960
2004년 연변세기팀의 집단사진.

 

연변팀에 가담한 이듬해인 2004년에 지문일선수에게는 더 큰 무대에서 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차례졌다. 2004년에 지문일선수는 국가청소년팀에 뽑혀 나라를 대표하여 뽈을 차는 국가선수의 영예를 안게 된 것이였다. 

 

지문일선수는 2005년 9월 23일에 있었던 가나팀과의 경기에서 수문장으로 나섰던 기억을 평생 지울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나팀과 이기거나 비기기만 해도 중국팀에서는 8강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중요한 수문장자리를 지문일선수가 맡게 된 것이였다. 지문일선수는 그 날 경기에서 대방공격수와의 1:1 상황에서의 관건적인 뽈 두개를 성공적으로 막아내면서 결국 1:1로 가나팀을 압박하고 빅음으로써 중국청소년축구팀이 사상 처음으로 8강에 들어가는 데서 결정적으로 수문장역할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문일선수는 2006년도부터 갑B리그에서 키퍼로 뛰면서 2006년에는 3~4경기, 2007년에는 19경기, 2008년에는 15경기, 2009년에는 10경기, 2010년에는 27경기… 등 점차적으로 팀의 주력키퍼의 역할을 해나갔다. 그 때 당시는 팀의 키퍼 두명이 거의 절반씩 경기에 엇갈아 나서는 상황이였다. 2011년에 펼쳐진 축구협회컵에서 지문일선수는 광주일지천팀과의 페널티킥대결에서 무려 네개나 되는 페널티킥을 막아내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61f6e1605ecc07b874f860da03b08bf0_1545960
2016년 동계훈련에서의 지문일. 

 

61f6e1605ecc07b874f860da03b08bf0_1545960
훈련하고 있는 지문일. 

61f6e1605ecc07b874f860da03b08bf0_1545960
훈련하고 있는 지문일. 

 

지문일선수가 꼴키퍼로서의 능력을 크게 인정받으면서 일약 주력꼴키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은 2015년에 펼쳐진 축구협회컵에서 소주동오팀과의 대결에서였다. 연변팀은 경기 91분 만에 페널티킥 벌축을 받고 사실상 패배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지문일선수가 키퍼로 나서서 그 페널티킥 벌축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이어 동점상황에서 치러진 페널티킥 승부차기에서 무려 두개나 되는 페널티킥 강슛을 막아내고 소주동오팀을 꺾어버린 것이였다. 

 

한창 물오른 지문일선수의 키퍼재질이 박태하 감독의 눈에 들어 지문일선수는 그 후로 오래동안 연변팀의 주력키퍼로 나서게 되였으며 2015년 갑급리그 다섯번째 경기부터 시작해 그 후의 경기에 25껨 련속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2015년도에 지문일선수는 여섯경기 련속 꼴을 허락하지 않고 련속 565분간의 무실점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연변축구사상 최장시간 무실점기록을 냈던 연변오동팀 블라지마의 380여분 기록보다도 더 긴 시간으로 기록되였다. 

 

61f6e1605ecc07b874f860da03b08bf0_1545960
지문일선수를 응원하고 있는 가족들.

 

2015년도에 연변팀은 갑급리그우승과 슈퍼리그진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금의환향으로 고향팬들의 열렬한 축하와 환영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2015년 시즌 갑급리그 최우수꼴키퍼상을 수상한 ‘거미손’ 지문일키퍼의 값진 땀방울과 숨은 공로가 잠재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소에 부단한 키퍼기술 련마와 제고를 위해 에스빠냐의 유명한 키퍼인 카시리야스의 동영상을 꼼꼼히 체크하면서 많이 배운다는 지문일선수는 연변팀의 한국적 김성수 꼴키퍼 코치에게서도 정말 많은 유익한 지식과 기술들을 배웠다면서 마음속깊이 감사의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2015년 시즌은 물론 2016년 시즌에서도 지문일선수의 선방과 수문장표현이 뛰여나 많은 축구팬들은 지문일선수에게 ‘지신’, ‘거미손’, ‘꼴막기왕(扑救王)’ 등 멋지고도 사랑스러운 별명을 달아주기도 했다. 

 

61f6e1605ecc07b874f860da03b08bf0_1545960
2015년 시즌에서 ‘최우수꼴잡이’로 당선된 지문일. 


지문일선수의 꿈은 축구인으로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무대에 한번 나서보는 것이다. 직업축구선수로서 아시아 최고의 직업축구선수무대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꿈과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더 먼 후날의 타산을 밝힌다면 그동안 갈고 닦은 키퍼기술의 모든 노하우들을 후배제자들에게 빠뜨림 없이 모두 전수하고 싶다고 했다.

 

지문일선수에게는 이제 막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아들애가 있다. 아버지가 축구선수라고 자녀들이 반드시 축구선수로 되는 건 아니지만 아들애가 축구를 하고 싶어 한다면 그 꿈을 존중하고 키워줄 것이라고 지문일선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길림신문 김룡 안상근 기자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국우승50주년 목록

Total 47건 1 페이지
전국우승50주년 목록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끝)지충국편 인기글 연변팀의 공격과 수비의 핵심—지충국선수 2013년 프로축구 100경기에 출전한 지충국. 연변팀에서 공수의 핵심역할인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선수가 누구냐 하고 물으면 지충국선수가 어김없이 떠오른다. 1989년 10월 26일생인 지충국선수는 키가 1.74메터이고 몸무게가 65키로그람이다…(2018-12-31 09:11:28)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6)지문일편 인기글 연변팀 슈퍼리그진출의 숨은 공신 지문일 지문일. “훌륭한 꼴키퍼 한명이 절반 축구팀을 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축구경기에서 꼴키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작은 점수 차이라도 승패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축구경기 규칙상 키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대비해 나온 일리 있는 말이다. 팬들로부터 ‘지신(池神)’, 연변팀의…(2018-12-28 09:34:46)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5)윤광편 인기글 17년 동안 한 우물을 파온 키퍼―새 세기 연변팀의 최장수주력기퍼 윤광 연길시중앙소학교에서 축구공에 싸인하고 있는 윤광선수. 연변팀 축구사상 가장 오랜 시간 꼴문대를 지켜온 키퍼 윤광, 십수년의 사계절이 바뀌여오는 동안 팀의 풍상고초를 함께 헤쳐가며 동고동락해온 그가 지켜온 건 단지 꼴문대뿐이 아니다. 팀의 든든한 버팀…(2018-12-26 08:38:53)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4)문호일편 인기글 “연변팀 선수로 슈퍼리그에서 뛰고 싶었다.” 문호일. “밝고 씩씩한 젊은이구나.” 경기장에서 날파람을 일구던 모습과는 달리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호일이의 첫 인상은 이러했다. “연변팀 유니폼을 입고 연길에서 슈퍼리그를 하고 싶었는데 평생 유감으로 남았습니다.” 35세의 문호일은 그렇듯 연변팀을 사랑했고 연변축구를 사랑…(2018-12-24 09:10:12)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3)정영학편 인기글 ‘최후의 보루’를 묵묵히 다져가는 조련사―키퍼코치 정영학 정영학 꼴키퍼는 축구의 포지션중의 하나로서 그라운드 내부에서 유일하게 손을 사용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서 축구진영의 ‘최후의 보루’이자 ‘팀의 절반 하늘’이며 수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특정된 상황에서 만큼은 무엇이 어찌됐든 실점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의 일거수일…(2018-12-21 09:36:20)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2)황용편 인기글 팬들에게 두번째 프로구단을 안겨준 기적의 사나이—황용 경기를 지휘하고 있는 황용. 2017년 10월 29일, 이 날은 연변축구 백년사에서 큰 획을 긋는 력사적인 하루였다. 46세인 조선족축구감독 황용(黄勇)이 이끄는 연변북국축구팀이 내몽골 포두올림픽체육쎈터에서 펼쳐진 포두록성초상비(鹿城草上飞)팀과의 ‘2017’동도위업(…(2018-12-19 09:39:06)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1)방근섭편 인기글 트럼페트를 불던 ‘축구신사’ 방근섭 방근섭. “어려서는 학교음악써클을 다니면서 트럼페트에 빠졌더랬습니다.” 프로선수시절 모습 그대로 갸름한 얼굴에 항상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방근섭(1969. 4. 11—) 감독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화룡시 두도진 광흥중학교 무용교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소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2018-12-17 09:04:59)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10)장경화편 인기글 끈질기고 완강한 경기작풍의 ‘무쇠방패’―원 연변오동팀의 주력수비수 장경화 장경화. 1994년부터 중국의 직업축구경기인 갑A련맹경기가 전국적으로 정식으로 시작되고 축구경기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축구의 고향’ 연변에도 세찬 축구열풍이 불었다. 당시 연길시인민체육장은 경기 때마다 빈자리 하나 없을 정도로 구경군들로 인산인…(2018-12-14 08:25:28)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9)리시봉편 인기글 탈곡장축구선수 갑A무대를 주름 잡다―고홍파를 이기고 최우수공격수에 선정된 리시봉의 이야기 리시봉. “그 땐 논밭이나 탈곡장이 우리 축구장이였지요.” 걸걸한 성격에 묻는 말에 곧잘 우스개로 대답하는 리시봉(1973. 9. 27—)씨가 하는 말이다. 연길시 장백향 동광촌에서 태여난 리시봉은 어려서부터 축구를 즐겼다. 수…(2018-12-12 09:45:42)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8)박문호편 인기글 갑A 첫 원정승을 일구어낸 공신―― 원 길림성축구팀의 주력공격수 박문호 박문호. 청소년축구양성에 모든 걸 바치고 있는 박문호. “소학교 4학년 때까지 정규적인 축구지도를 받아보지 못했지요.” 보기에도 시원시원하게 생긴 박문호가 언제부터 축구를 시작했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하는 말이다. 1968년 1월 24일에 룡정시…(2018-12-10 08:50:52)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7)리찬걸편 인기글 북경조선족축구운동의 일등공신―― 원 길림오동팀 리찬걸선수 북경조선족축구협회를 이끌고 8년 동안 땀동이를 리찬걸. 길림오동축구팀의 선수로 활약하다가 은퇴한 뒤 북경에 가서 북경조선족축구협회를 이끌고 현재까지 8년간 열성을 다하고 있는 리찬걸은 고향이 료녕성 심양시이다. 심양시 소가툰에서 태여나 평안남도 말씨를 구사하는 …(2018-12-08 09:45:48)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6)졸라편 인기글 연변사람이 된 자이르초원의 흑인소년―용병 졸라의 이야기졸라. 아프리카에서 왔다면 많은 사람들은 사하라사막을 떠올리고 사막에서 맨발로 달리는 흑인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졸라가 태여난 자이르(1997년부터 꽁고민주공화국)의 서남부 적도에 위치한 반둔두성은 열대우림기후 지역으로서 열대삼림과 열대초원이 이어진 아름다운 곳이…(2018-12-05 09:14:39)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5)최광일편 인기글 연변축구 영광의 시절에 퇴역한 축구선수 최광일 최광일. ‘97’갑A련맹경기는 연변팀은 물론 연변의 허다한 축구팬들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격정의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해 시즌에서 연변팀에서는 한국감독 최은택의 인솔하에 련속 9껨의 경기에서 불패의 신화를 창조하고 최종 갑A리그 4강이라는 훌륭한…(2018-12-02 11:34:32)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4)리홍군편 인기글 105메터 그 곳의 마지막 수비수 리홍군 리홍군. 벌써 20년이 지난 그 날의 정경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리홍군은 국내외의 경기에서 발로 무수히 뛰였지만 인상에 제일 남는 건 그 날의 경기라고 말한다. 그 날 길림성축구팀에서는 제7차 전국운동회의 축구경기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로 출현하고 있었다. …(2018-11-28 09:59:35)
《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3)리광호편 인기글 갑A리그를 주름 잡은 주장―1990년대 연변팀의 핵심중앙수비수 리광호 리광호. 지난 세기 90년대에 중국축구의 최고무대인 갑A리그에서 연변팀의 든든한 주장으로 뛰면서 중앙수비선에서 맹활약하던 축구선수가 있다. 3번 유니폼을 입고 연변축구의 궐기와 발전에 자기의 젊음을 아낌없이 바쳤던 공신, 수많은 축구팬들에게 키 크고 …(2018-11-26 08:50:50)
게시물 검색

Copyright © 2005 인터넷길림신문 all rights reserved. 吉ICP备07004427号

本社: 長春市綠園區普陽街2366號 Tel: 0431-8761-9812 分社: 延吉市新華街2號 Tel: 0433-253-6131

記者站: 吉林 (0432) 2573353 , 通化 (0435) 2315618 , 梅河口 (0448) 4248098 , 長白 (0439) 822020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